새로움으로 지평을 넓히는 장애인복지학회
장애인복지에 관한 학술 연구를 통하여 한국의 장애인복지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아니면 생존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피엔스의 유전자 때문일까요?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들이 내면에서 솟구쳤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장애’ 연구자가 되었는가? 26년간 나는 어떤 연구를 하였는가? 그 연구의 의미는 무엇이고,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 연구는 무엇인가?
1. 한 인간의 삶을 절대적으로 제약하는 귀속적 조건(태어난 시대와 국적/영토, 계급, 타고난 능력 등)과 삶의 예측불가능성(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에서)이라는 인간 삶의 총체적 타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지금에, 첫 번째 질문에 제가 겨우 답할 수 있는 것, 장애라는 현상/사태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는 것입니다.
2. 1998년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계약직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장애인보조기기 연구에 참여한 이래로 지금까지 주력해왔던 ‘장애’ 연구는, 산업사회에서 유전/질병/사고 등에 의해 발생하는 장애가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자립능력의 제약, 의존성, 사회문화적 배제 등)의 실증적 규명과 사회정책적 대응(소득/고용/돌봄지원 등)의 갱신이었습니다, 즉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오래된 사회적 위험 중 하나인 장애에 대응하여 복지국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장애인정책의 조건/토대(위험의 규모와 수준, 해결을 위한 제도의 한계와 대안 등)라는 경계 내에서 고민하고 사유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장애인정책이 토대한 그 경계위에서 때로는 사유하고 고민했던 지적 작업의 결과물이 제도화되거나 분명 커다란 진전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제도의 변화에 일말의 기여를 했다는 보람과 성취를 맛보기도 하였으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많은 순간에 어떤 한계 혹은 난관의 상황에서 좌절해왔습니다. 곤경은 때로는 벗어나고픈 목마름과 욕망으로 전회되기도 하는 걸까요? 무엇보다 이러한 질문에 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 손상이란 무엇인가? 왜 하필 그/그녀에게 손상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 인간을 구성하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생물학적/신체적 속성들 중 하나인 장애(손상)를 몸의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낙인화는는 사회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 손상된 몸의 존재는 어떻게 타자(물질세계, 사회제도 및 타인 등)와 접촉하며 감각하는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내는가? (자기혐오~자기수용/긍정, 사회적 배제~사회 행동)
- 어느 날 갑자기 혹은 무엇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이유로 손상을 갖고 억압적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어떤 인간의 실존(혹은 예정되었으나 아직 오지않은 나의 미래)에 대해 동료 인간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 공동체(국가)는 손상된 몸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그간의 고민과 사유에 기대어 감히 말씀드리자면, 장애는 존재와 세계의 본질로 들어가는 열쇠이며,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들(담론)은 존재와 세계를 해명하고 실천하는 가장 급진적인 최전선의 담론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장애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저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별유연화(personalization), 사람중심생각/실천(person centered thinking/practice), 권리중심노동, 개인예산제 등 최근 사회복지의 주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대안적 정책/실천 등은 장애담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입니다. 나아가 손상된 몸의 존재(장애인)를 비롯하여 건강과 정상성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다른 몸의 존재들(여성의 몸, 늙은 몸, 아픈 몸, 손상된 몸, 어린 몸, 피부색이 다른 몸, 성적 지향이 다른 몸, 상처받은(트라우마를 가진) 몸, 합법체류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몸(이름없는 몸) 등)이 불완전한/열등한/무능력한/위험한/무용한/자격없는 몸으로 낙인화되어 억압/배제/차별받는 몸으로 전환되는 것을 드러내고 모든 몸의 해방과 평등을 실현하는 가능성이 장애 담론과 장애 운동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담론이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담론과 실천의 간극 혹은 거리는 꽤 깊고 멀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복지/장애 연구자로서 저의 소망은 존재와 세계를 해명하는 담론과 현실의 사회정책/장애인정책간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장애인복지학회라는 학술적 공론장의 역할, 지난 20년간 학술대회에서 말하여졌던 모든 이야기들이 담론과 실천의 접점을 찾고 연결해보고자 했던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회장에 취임하면서 학회원분들께 진솔하게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자기고백과 성찰로 시작했던 것인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2년간 한국장애인복지학회의 학술대회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통해 한국의 장애인복지 혹은 장애인정책의 토대가 더욱 깊어지고 더욱 넓어지기를 소망하며 미력하나마 더 많이 고민하고 앞장서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책과 실천의 이슈를 아우르며 한국장애인복지학회라는 공론장이 장애인복지의 토대이자 맥락인 인간/존재와 사회/세계에 대한 풍부한 담론과 이를 현재의 정책과 실천에 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그야말로 거침없이 얘기되어질 수 있도록 학회원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 시국과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이웃들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여느 해와 다르게 무겁고 먹먹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객기사고 희생자 분들을 추모하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2025년 1월 2일
제11대 한국장애인복지학회장 윤상용 드림.
